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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천안] 돌아온 탕아

기사승인 2019.05.13  17: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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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아들은 객지를 돌아다니며 술과 노름과 여자에 빠져 아버지가 분배해준 재산을 탕진한다. 그리고 방황을 하다가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켜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한다. 아들을 나무라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법화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부자가 어린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수십년이 지나 한 거지가 구걸을 하러오자 아버지는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챈다. 처음에는 허드렛일을 시키며 일을 배우도록 하고 나중에는 재산관리를 맡기며 그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두 이야기 모두 방황과 귀환을 담고 있다. 방황은 집을 떠나 떠도는 것이고, 귀환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기 자리를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사랑과 지혜를 전제로 한다. 낳아서 기르고 가르쳐준 인연 하나만으로도 아들에겐 의지처가 된다. 

우리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다. 방황하며 갈등하고 고통을 받거나 때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물론 그 방황을 잘 극복하며 공부를 증장시키면 한층 더 높은 단계에서 인생을 살 수도 있다. 있어야 할 자기 자리, 또는 본래의 자리를 떠나 있다면 방황이고, 내가 안락하며 행복한 자리에 있다면 귀환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유복한 가정에서 아무 걱정없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고 해서 방황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 행복은 조건따라 일어나는 일시적인 것이며, 언제든 소멸된다. 또한 그 역시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나고 죽는 고통이 계속 반복되니 얼마나 지독한 방황인가.

그러니 영원한 행복과 최고의 즐거움만 있는 극락세계로 가서 부처님 법문을 듣고 생사에서 벗어나는 일이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 방황을 끝내는 것은 아닐까? 살아서는 못할지언정 죽어서라도 꼭 왕생하는 일이야말로.

[불교신문3488호/2019년5월15일자]

만우스님 논설위원·시인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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