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결과는 없다. 나에게 닥치는 모든 일, 일체의 인연들도 마찬가지이다. 사진은 금정총림 범어사 조계문.  장용준 기자
세상에는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결과는 없다. 나에게 닥치는 모든 일, 일체의 인연들도 마찬가지이다. 사진은 금정총림 범어사 조계문.  장용준 기자

# 제23화 택시에 두고 내린 안경을 찾다

궁석자구칭빈(窮釋子口稱貧)
실시신빈도불빈(實是身貧道不貧)

궁한 부처님 제자가 입으로는 가난하다 말하나,
실로 이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이라.

 [강의]

진정한 부처님 제자가 되려면 몸이 가난해야 한다. 하지만 입으로는 가난하다 말을 하나 결코 마음까지 가난하지 않다는 뜻이다.

무엇을 가지고 있으면 가지고 있는 그것에 항상 신경이 쓰이고 집착되기 십상이다. 가지고 있는 것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얻고자 함이니, 그러나 즐거움은 곧 인과(因果)의 틀에 걸려서 괴로움의 과보(果報)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돈이나 집, 애인이나 가족 등을 가지고 있으면 그에 따른 기쁨과 즐거움이 상당하기 때문에 누구나 가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돈과 집, 애인과 가족에 따른 부작용이 반드시 생기게 되는 것이니, 그로 인한 괴로움의 과보(果報)도 만만치 않게 생기게 된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하여 오는 불편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가지고 있음으로 하여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보다, 갖고 있지 않음으로 하여 받는 불편함이 더 클 수도 있으나, 이 구절에서 말하는 가난은 갖는다 갖지 않는다는 분별(分別)된 생각이 떠나고 없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깨친 옛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거년무추지(去年無錐地) 금년추야무(今年錐也無)” 작년에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올해는 송곳마저 없구나.”

작년에는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다 버려서 송곳 세울 땅도 없을 만큼 망상(妄想)이 가난해졌으나, 망상이 끊어졌다는 그 생각의 송곳이 아직 남아있었으니, 올해는 그 송곳마저 사라졌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옛 스님들은 “학도선수차학빈(學道先須且學貧)”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가난 함부터 먼저 배우라고 하셨다. 또 당나라의 방거사는 모든 재산을 배에 싣고 가서 동정호에 모두 빠뜨리고는 대조리를 만들어 장에다 팔아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도 될 것인데 호수에 굳이 빠뜨린 이유가 뭘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자신과 똑 같은 맥락으로 물건을 취함으로써 집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 일 것이다.

어제는 입법사라는 분이 안경을 맞춰 주었다. 쓰고 있는 안경이 두어개 있으니 필요치 않다고 했으나 꼭 해주고 싶다고 하여 남대문에 가서 두개를 선물 받고 돌아오는 길에 택시에 놔두고 내려버렸다.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순간 아깝기도 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었으나 곧 집착된 생각을 지워버렸다. 물건을 가지면 이내 집착이 생긴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머뭇거리다가 다행히 택시비 카드 결재를 한 생각이 나서 여러 경로를 거쳐 한참만에 택시 기사와 연결이 되어 결국 찾게 되었다.

여러가지 재산을 갖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일 수도 있다. 모두가 집착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집착하여 즐거운 일에는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따르기 마련이니, 그에 상응한 불편함이 반드시 생긴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가장 좋은 생각은, 얻거나 잃는 것 모두에 집착하지 않는 감정이다. 얻고 잃는 것은 인과(因果)의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얻은 것에도 초연하고 잃는 것에도 초연한 마음을 갖는 것이 무소유(無所有) 정신이다.

가난은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지려고 하는 망상(妄想)의 마음이 없는 것을 입으로만 가난이라고 한다. 굳이 갖지 않으려는 마음 또한 소유욕(所有慾)에 해당하니, 갖고 갖지 않는 두가지 분별(分別)의 마음마저 사라져야 진정한 무소유(無所有)요, 가난하지 않음이다.

결론적으로, 얻거나 갖는 것에도 초연하고, 잃거나 사라지는 것에도 초연한 마음을 가져야 하느니, 그래야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를 받지 않아 괴롭지 않고, 8만 4천의 법(法) 보배의 인연을 만나, 집착하지 않는 진정한 부자로서 절대 편안함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초연한 마음을 가지려면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의 힘을 빌려야 한다.

# 제24화 맑음과 비와 바람과 싸우는 이

빈칙신상피루갈(貧則身常披縷褐)
도칙심장무가진(道則心藏無價珍)
가난한 즉 몸에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도를 얻은 즉 마음에 무가보(無價寶)를 감추었도다.

[강의]

피루갈(披縷褐)은 누더기를 말한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뜻은 지난 구절에서도 말했듯이, 욕망과 더불어 분별심(分別心)이 전혀 없는 온존한 상태를 말하는데, 이를 입으로는 가난하다고 말한다 했다.

안이 그러할 진데 밖에서 비단옷을 입은 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러므로 안과 밖이 같다는 것인데, 좋고 나쁜 분별(分別) 시비(是非)를 떠났다는 의미에서 누더기를 입는다.

이미 분별(分別) 망상(妄想)을 떠나 하나라도 집착하고 탐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니,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배를 마음 속에 지녔다는 뜻이다. 그러하니 삼천대천세계 보다 억만 배 더 큰 보배가 내 것이 된다 한들, 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분별(分別) 망상(妄想)이 사라진 마음 상태는 과연 어떠한가? 우선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있어서 걸림이 없다. 몸에 있어서도 걸림이 없고, 어떤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들어도 걸림이 없으며, 오만 가지 생각을 한다 해도 전혀 걸림이 없음이다.

걸림이 없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전혀 없고, 불편함이나, 아쉬움, 모자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니,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마음 상태가 항상 유지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감정의 기복이 한점도 없다.

이러한 마음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매우 간단하다. 인과(因果)의 이치와 질서를 무조건 믿으면 된다. 그 뿐이다. 무엇을 얻는 것이 있으면 “인연 따라 내게 왔구나” 라고 생각하고, 어떤 것이 나가거나 사라지거나 잃어버렸다면 이 또한 “인연 따라 나갔구나” 라고 생각하고 결코 집착하지 않으면 그 뿐이다.

몸이 아프면 “아플 때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마음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게 된다. 그러나 만약,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냥 하면 된다. 또 하고 싶은 대로 잘 되지 않으면 “아직 인연이 되지 않았구나” 하고 포기하면 된다.

포기하기 싫으면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다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을 상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마음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인과(因果)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인과(因果)의 이치를 알고 믿는 신심(信心)이 돈독하게 되면, 일체의 모습이나 그 행위에 대해 조금도 빈틈없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보고 있는 이 모습, 이 현상이 인과(因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을 시비(是非)하며 왜 그런가 하고 따질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떤 인연이 닿더라도, 내 입장에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모두가 원인에 의한 결과 즉, 너무나도 당연한 인과(因果)의 모습일 지니, 무엇을 따지고, 어떤 것을 거부하며, 무엇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세상에는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결과는 없다. 나에게 닥치는 모든 일, 일체의 인연들도 마찬가지이다.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면 화가 날수록, 속상해 하면 속상할수록, 모두가 나의 몫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은 모두가 나의 잘못된 업식(業識) 때문이니, 이를 조금이라도 이겨 내려면 기도 참선 보시 정진을 조금씩이라도 결행해야 한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14호/2024년4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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